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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Tim Keller라는 목사님의 설교를 좀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한국어로 정리한 글입니다. 전체 설교 audio랑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http://www.jongha.com/jdoc/view_page/846

이 topic은 지난주 목장에서 나온 얘기인데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이면서도 대부분 자세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그런 주제입니다. 기독교의 주장데로 따르면 예수님을 믿지않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인데 이런 교리를 어떻게 믿지않는 사람에게 전할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는 비판하면서 오히려 불교나 천주교를 왠지 포용성이 크고 덜 배타적이다라고 생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게된 이유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Gospel)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거나 적절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면에서 우리도 복음을 제데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이 있죠. 아는데 설명할수 없으면 사실 아는게 아니다. 사실 저도 설교를 듣고 정리를 하고 다시 review를 하지 않고서는 쉽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즉 일상의 삶에 복음의 원리와 깊이를 깨닭고 살지 못한다는 뜻이죠. 이번 글을 통해서 저 스스로 다시 한번 집어보는 계기가 되서 좋았구요 또 다른 분들한테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맘입니다.

 

Tim Keller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설명하기 보다는 기독교의 본질 즉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함으로서 기독교는 배타적인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인 포용적(inclusive)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종교의 개념과 복음의 내용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Keller는 주장하길 종교는 사람들사이에 구룹을 형성하게 만들고 분열과 반목을 만듭니다. 인간역사의 존재했던 대부분의 전쟁은 종교간의 갈등에 기인한 것이고 그 갈등은 오늘날에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게 되면 3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되는데

  1. 첫째, 겸손한 섬김 (humble service)
  2. 둘째, 화해의 행동 (reconciling behavior)
  3. 셋째, 나와 다른 사상을 가진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  

 

Keller는 이 복음을 설명하기 전에 종교에 대해 심층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insightful 하죠. 왜냐하면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는 우리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종교성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기 때문이죠. 그에 따르면 어떤 구룹의 사람이 자신들이 진정한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진리를 따라서만 구원에 이를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는 것이죠. 이 부분까지는 우리 복음주의 개신교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 무슬림 할것 없이 다 똑같은 모습이죠. 다들 서로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죠.

 

중요한건 이런 주장을 할때 사람들에게 생기는 심리적현상입니다. 자신만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대해 일종의 우월감(superiority)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 자신을 분리시키며, 자신을 그들로 부터 멀리하고, 편견의 벽을 세우고, 심지어 그들과 우리는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까지 합니다. 이게 바로 종교가 주는 분리성이죠. 기독교의 배타성이라는 말은 바로 이 기독교의 종교성때문에 생겨난 개념입니다. 기독교만이 구원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때 기독교는 어쩔수 없는 종교적 분리를 만들어내고 맙니다.
이런 종교적 배타성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두가지 방법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 첫번째는 세속주의(secularism)입니다. 이 방법은 무슨 뜻이냐면 종교는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종교는 일종의 약자들이 만들어낸 심리적 도피처같은것, 진리는 과학으로 입증될수 있다, 등으로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사람은 종교자체를 피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이 세상은 자연법의 원리와 진화론적으로 흘러간다고 믿고사는 것이지요. 이런 세속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에겐 이런 글을 읽는것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데 관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두번째 방법은 상대주의(relativism)입니다. 종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종교도 옳고 저 종교도 옳을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고 이를 존중하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러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문제가되는 이런 종교얘기를 피하자는 것이죠. 각자 알아서 믿고 남의 믿는것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을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세속주의가 득세를 하고 있는 것 같으나 인간은 여전히 이 종교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고 이해할수 없는 참사가 발생할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해답을 구하곤 합니다. 이것도 진리고 저것도 진리가 될수 있지 않냐라는 상대주의적 주장은 너무다 쉽게 반박할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난아기를 육체적 고통으로 고문하는 행위가 옳은지 아닌지를 물어본다면 누구나 그건 옳은 일이 아니라고 할것입니다. 왜? 세상엔 절대적 윤리(absolute moral)이 있게 때문입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죠.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음은 우리에게 어떤 해답을 줄수 있나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알기 위해선 세가지를 살펴볼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가 기독교의 종교성이 아닌 기독교의 복음의 본질이 다른 종교와 다름을 보여주고 있고 이 복음은 배타적이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 구원의 기원
  2. 예수님 구원의 목적
  3. 예수님 구원의 방법 

 

첫째, 예수님이 구원하러 오신것 자체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대분분의 종교는 선지자나, 신적 대리자들이 있는데, 기독교는 신(하나님) 스스로가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대부분의 종교는는 고난많은 이 세상에서 벗어나 평와가 있는 낙원으로 가는것이 목적입니다. 고통많은 육체로 부터 구원을 얻거나 이 세상으로 부터 자유로워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구원의 목적은 이 육체와 세상을 새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탈출이 아니라 새롭게(renew)하는데 있습니다.
셋째, 예수님 구원의 방법은 은혜의 방법입니다. 다른 종교는 구원을 위해선 우리가 뭔가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가 뭘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뭔가라는 것이 바로 인간이 상상할수 없는 엄청난 희생적인 사랑인것이죠. 도저히 인간이 지어낼수 없는 그런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 사랑의 이야기 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위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 죽으신것입니다. 내가 죽어야하는데 나 대신 죽으셨다는게 복음인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이 말하고 있는 구원이란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만드는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다 포용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특정 종교인을 구원하시려 오신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러 오신것이고 우리의 선행에 상관없이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신겁니다. 이런 복음의 내용은 우리를 다른 종교를 배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기독교가 독선적 배타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과 비슷한 종교들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오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복음의 내용은 다른 사람을 나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이 모든 인간을 다 포용하시는 구원의 방법을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글쎄 이젠 이런 내용을 이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설명할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