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부자 비유 (눅 12:16-21)

이 비유를 하시게 된 동기는 주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시는 도중에 그 말씀을 가로막고 가족의 유산에 관한 논쟁의 중재자가 되어서 부당한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책망하시고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면서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가르치시고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이것을 모르고 비유에 나타난 부자와 같이 먹을 곡식만 많이 쌓아 놓으면 오랫동안 평안이 먹고 마시고 즐거웁게 살 줄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1.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비그리스도인들도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마6:25~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기르신다. 사람은 더 귀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더 귀하다. 이 세상에서 죽음은 참으로 다양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 일은 많지 않다. 굶어 죽는 것도 그 사람의 생명이 다돼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즉 기근, 흉년 등으로 죽게하는 것이다.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밥 잘먹고 갑자기 죽는 예도 허다하다. 없어서만 못먹는게 아니라 많이 쌓아두고도 못 먹고 죽는 예가 허다하다. 

결국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사는 것이지 소유가 많아서 사는 것은 아니다. 이 진리를 잘 깨달으면 탐심을 물리칠 수가 있다. 


2. 인생의 행복도 소유의 넉넉한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난해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자가 되어도 행복하지 못한다.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심령이 기쁨이 있고 평안해야지 다른 것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이 부자는 물질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살 줄 알았으나 생명을 불러 가시니 그가 쌓아 놓은 것을 누리지 못하고 말았다. 부하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가난할 때는 부자만 되면 행복할 것 같지만 부자가 되면 가난할 때가 그래도 행복했다고들 깨닫는다. 부자가 건강을 잃을 수 있고 자녀들이 잘못되는 수도 많고 도덕적 타락도 많다. 인생을 바르게 살지 못하고 허영과 사치와 향락과 죄짓는 생활을 많이 할 수 있다.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

① 많은 재산 관리 때문에 염려와 걱정을 가짐 (17~19)

②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부에 의하여 잘 보전될 줄 알고 있는 점. 즉 자기 생명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어리석은 점이다.

③ 재산을 믿고 안일한 생활의 확실성을 자신하는 망상(19절)

④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점 - 자기 재물의 부요를 믿고 하나님께 의존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분량에 만족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망각하고 애를 쓰면서 많은 재물을 모으고 그 재물만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땅의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주님의 돌보심만 의지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이다.


어리석은 부자

눅 12:16-21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 말씀 중에 한 부자가 그 전답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워 심중에 생각하기를 '이 많은 곡식을 어디에다가 쌓아 둘꼬. 쌓아 둘 곳이 없으니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그곳에 물건과 곡식을 많이 쌓아 두자. 그리고 영혼이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자'고 했다.

이 부자는 자기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계획하고 살아가는 자라고 생각했다. 영농기술이 있고 많은 수확과 근면, 성실, 자립성, 그리고 내일의 멋있는 삶을 계획할 줄 알고 재산을 아끼고 절약하는 저축가로서 나름대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셨다. 왜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는가


1. 그의 인생관이 어리석었다.

그의 인생관이 어리석다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였다는데 있다. 본문에서 무려 "나" "내"라는 말이 6번이나 나온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농사 지은 것을 몰랐다. 햇빛을 주시고 공기를 주시고 때에 따라 비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다는 말 한번도 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이웃에 가난한 자를 돌볼 줄 몰랐다. 이 부자는 소출이 많아서 곡간을 헐고 새로 지어야 하겠다는 걱정은 해도 하나님께 감사나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걱정한 일은 없었다.


2. 부의 가치관이 어리석었다.


그는 부에 대하여 자기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목적이 있었다. 사람은 그 재산에 있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재산을 잘 활용하여 선한 일에 써야 되는 것이다. 재산은 <록펠러 카네>가 말한대로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고 하였다. 재산에 대하여 잘 쓰지 아니하면 그에 대하여 화를 받게 된다.


3. 부자의 세계관이 어리석었다.


부자는 현세주의자이지 내세를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특히,

(1) 자기 죽음에 대하여 몰랐다(히9:27).

(2) 자기 죄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

(3) 죽음 후에 내세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였다.


결론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 없이 살았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

네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눅12:13-21

본문 21절을 보면 세상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많이 쌓아 두어 부자처럼 보였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유치 못한 가련한 인생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풍년을 맞은 들녘에서 <내가 곡식을 더 이상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창고를 더 짓자. 거기에 곡식과 보물을 쌓아 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자>

바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내포된 뜻은 우리 인생은 온 곳이 있으며, 보낸 자가 있고, 돌아가야 할 곳이 있으며, 우리 인생의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자로 종교라고 하는 종자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땅이 있고 하늘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인간이 나아갈 수 있는가?

사람들은 제사를 통하여 신에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므로 종손, 종가라고 하는 것은 제사를 모시는 자손, 제사를 지내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금속을 녹여 부어 형상을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제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너희가 만든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하느냐?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이 망하리라>(시115편)


우리는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이라고 하시는 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내 영혼을 주관하시고, 내 영혼을 도로 불러 가실 수 있는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아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통달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가장 완전한 지혜입니다. 



오늘날 과학이 알지 못하는 분야가 거의 없다고 공언합니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인공위성을 통해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일기예보도 정확합니다. 진정한 비밀을 가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청와대 안뜰에서 일어나는 일과 서로 대화하는 이야기까지 도청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과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가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촬영하지는 못하며, 우리의 생각을 중계하지는 못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모든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나이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시129편)

이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의 부자를 보십시오.


그는 아마도 영리하고 부지런하여 돈을 모았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이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그는 내세를 몰랐습니다.
그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내세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지라도 그는 거기에 관심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혼을 위한 대비가 없었습니다. 
그는 물질세계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고기 덩어리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쌓아 둔 곡식으로 자기 영혼을 주장할 수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이웃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소유해야 할 것들을 하나도 갖지 못한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의 이 짧은 구절 가운데 그는 <나>라는 말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밖에는 몰랐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인생의 종지부를 찍으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서 그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 인생이 언제 죽을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 홀로 왔다가 홀로 갑니다. 쌍둥이라 할지라도 함께 가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죽고 못사는 부부간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법칙은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 나의 것이듯, 죽음도 전적으로 나의 것입니다. 개인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부자가 장구한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였지만, 그날 밤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했습니다. 사람이 출세하고, 사업이니, 활동이니 동분서주해도 그것은 한 순간뿐입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서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면 ,나는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이 부르시면 그 앞에 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나는 어디에 서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백년전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수많은 돈을 벌고 일약 명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 버릇처럼 신문을 읽고 있는데, 자기의 사망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신문기사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 죽다> 그 기사를 읽은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자기 동생이 죽었는데, 기자들이 혼돈하여 자기가 죽은 것으로 기사를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망 기사 앞에서 깊은 침묵과 더불어 말할 수 없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폭약을 만들어서 재물을 얻고 명성을 얻었으나, 결국 인생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그는 신문을 찢어 버리면서 새로운 인생을 각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 유명한 노벨상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결국 돌아갈 곳은 두 곳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을 도로 찾으시면 나는 어디에 서겠습니까?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영생은 단지 하나님의 선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6)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영어로 종교란 말은 Relig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Re+ligate = '다시 이어준다' 라는 뜻입니다. 도저히 천국에 갈 수 없는 존재를 하나님과 이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종교입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무당입니까? 종교가입니까? 복술가입니까? 

기독교 외에는 없습니다. 이 일을 성취하신 분은 참 사람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분이 나의 지옥형벌을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분이 나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마시리라>(계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