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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
(눅11:5-13)
이 간단한 비유는 기도하면 반드시 주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하며, 이기적인 사람도 친구의 강청을 거절치 못하고 구한 바를 주고 악한 인간도 사랑하는 자들의 구함을 준다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들의 간구를 안들어 주시겠느냐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기도를 하기 전에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극히 양심적인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신만을 보고 부끄러워 기도조차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여기 "강청"이란 말은 파렴치란 뜻이다. 한밤중에 여간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면 떡을 빌리러 갈 수 없다. 그가 파렴치를 무릅쓰고 갈 수 있는 것은 그와의 관계 때문이다. 벗이란 관계, 충분히 파렴치한 행동도 이해하고 들어줄만한 관계이기 때문에 강청한 것이다.
어떤 때는 우리 스스로 내가 구하는 것이 파렴치한 것이라 생각되어 간절히 구하지 못하는 때가 있으나 어차피 우리는 정당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서 간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벗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가게 된 것이지 우리 자신만 보면 하나님 앞에 파렴치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파렴치한 행동을 해도 좋다거나 계속 파렴치하게 하란 말은 아니다. 기도하는데 있어서 어떤 점에서는 파렴치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여 기도를 못하지 말고 파렴치할지라도 계속 기도해야 하겠다.
주님이 가르치신 비유의 교훈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끈질기게 기도하란 말씀이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간절하게 드리는 것이다. 즉 기도의 대상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가지고 그분께 어떻게 구하여야하며 얼마나 간절히 구하여야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잘못된 대상에게 간절히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창18장의 아브라함이나 마15:21 이하의 가나안 여인의 끈질김, 야곱의 얍복강변의 끈질긴 간구는 마침내 응답되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눅11:5-13
서 론
기도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특권이요 공동 관심사다. 그래서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고도 한다. 기도에 대한 숱하게 많은 금언들이 있다. 그러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먼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도는 기도인지 설교인지 웅변인지 구분이 안가는 기도도 있다. 모두가 정확한 기도의 원리가 없는 까닭이다.
본문에는 주님께서 "기도는 이렇게 하여라"하신 말씀이다.
I.간곡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5-8)
A.기도는 한 밤중에 친구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같다
한 밤중에 자기 집을 찾아온 친구가 있다면 대단히 반가울 것이다. 친구란 언제 만나고 언제 보아도 싫지 않은 상대다.
더군다나 먼 곳까지 오느라고 시장해 하는 친구라면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음식을 대접해야만 한다. 그러나 막상 내게는 대접할 것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없다고 체념해 버린다거나, 귀찮다고 여기면 기도는 필요치가 않다.
저 친구는 이 늦은 밤중에 도착하도록 까지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저 친구를 위해서 무엇이든 답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기도는 시작된다.
그래서 내게는 없지만 나를 위해서 빌려 줄 만한 곳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고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기도다.
그러나 순순히 내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밤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을 통해 a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1)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 현대인은 자신을 귀찮게 하면 우정을 끊는다.
2)문을 잠갔고, 뿐만 아니라 잠자리에 들었다 - 과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B.기도는 친구를 감동시키는 것과 같다.
친구라는 사이는 서로 스스럼이 없다.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다. 만일 예의를 지키고 약점을 들춰내지 않는다면 친구는 아니다.
그러나 친구라는 막연한 관계보다 절박한 필요성의 호소는 오히려 우정 이상의 힘이 있다. 그래서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이라고 했다.
즉 친구이니 대충 말하면 알아들을 것이라는 생각이라든가, 친구가 거절하니 더 이상 조르기가 곤란하다든지, 자존심이 상한다든지 하는 문제를 앞세우면 기도는 성립될 수 없다.
II.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9-10).
A.적극적이어야 한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한 밤중에 자기 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는 먹을 음식이 필요하지 오락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목표가 정해졌다면 찾아야 한다. 그래서 비유에 나오는 사람은 음식에 여유가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찾아간 것으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열어 줄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B.배고픈 친구를 먹이려는 사랑이 필요하다.
자기 집에 찾아온 친구를 대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찾아 헤매도록"인도했다. 나의 문제가 "찾아 헤매도록"하고 있는가?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원리를 잘 기억해야 한다.
III.자녀와 아버지의 관계로 해야 한다(11-13).
A.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된 자라야 기도할 권리가 생긴다.
1) 청산유수로 하는 말이 필요한 게 아니다.
2) 얼마나 많이 아느냐는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3) 오직 중생의 경험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녀를 먼저 생각한다.
1) 아버지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키울까 하는 생각뿐이다.
2) 자녀가 요구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주고 싶어진다.
3) 자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통해 생의 보람을 느낀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요, 아버지로서는 인정받는 기쁨이 있다. 이는 아버지의 보람이다.
B.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한다.
응답 중의 가장 큰 응답은 "성령"이다.
1)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인정할 수 없다.
2) 성령께서 역사할 때라야 기도가 가능하다.
3) 성령께서 역사해야 기쁨과 만족이 있다.
우리가 성령받지 못한다면 정욕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다. 잘못 구한 기도는 응답도 없고 혹시 응답을 받는다 하여도 모두에게 불행할 뿐이다.
결 론
기도는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은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적당히 구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한 밤중에 나를 찾아온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행동이 바로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다.
간절한 마음, 친구에 대한 사랑, 응답 받으려는 집념이 어우러질 때 응답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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